살림하는 『조선의 남자들』

정말 수없이 말하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우리의 지성사나 문화에 대해 과문하기 짝이 없다. 읽어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그라파 작가나 철학자의 책을 옆에 끼고 있으면서도 한국문학을 다이제스트가 아닌 원본으로 읽기는 대학 시절이 처음인 것 같다.

생활사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자기 주변의 크고 작은 일들을 집요하게 써내려간 새뮤얼 핍스의 일기로 17세기 유럽의 일상이 구석구석 후대에 전해졌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같은 시대의 조선에도 그토록 꼼꼼하게 일상을 기록한 양반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이 책으로 처음 알았기 때문에 늦어도 많이 늦다.

책에 따르면 조선은 바로 일기의 나라다. 많은 양반 남자들이 집안일과 소소한 걸음걸이를 일기로 남겼다.특히 미암 유희춘이 11년간 쓴 일기는 새뮤얼 피프스나 맞먹는다고 할 수 있다. 일기는 물론 편지도 듬뿍 남겼다. 추사 김정희 집안은 가족끼리 수많은 한글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들 일기 또는 편지에 나타난 조선시대 양반 남자들은 애편과 뒷짐을 지고 공자의 왈만 읊는 선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얘기다. 반찬을 만들어 보낼 테니 어떻게 보관하라느니(그래, 조선시대 양반들 중에서도 색안 내는 남자가 적지 않았다), 노비 누구는 짜증나지만, 노비 누구는 이것저것 하자가 있으니 이것저것 일을 시키라느니, 집안일에 대한 잔소리가 작렬한다.

손자가 공부를 게을리했다고 심하게 꾸짖었다. 또는 엉덩이를 너무 때려 똥을 싸게 했다는 일화, 공부하지 않는 손자를 보고 화가 나서 그만 벽지를 손으로 찢어버린 고백까지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조선 남자 3명을 소개한다.

첫 번째가 퇴계 이황. 이분이 지폐에 그려질 만큼 학식이 높은 학자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분이 사실은 재테크에 열심이고 남다른 교육열로 치마 바람… 아니 바지 바람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첫 해에는 넉넉지 못했지만 근면한 부동산 사재기로 말년에는 노비 300여 명에게 논밭을 3000여 개 소유함으로써 조선 사상가들 가운데 최고 재산가가 된다.

자녀 교육에도 열심이었다. 아들에게 편지를 통해 공부 좀 해라 빨리 과거를 봐라 빨리 출세하라는 잔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쉽게 합격하지 못했고, 결국 퇴계는 “(조상 덕에 과거 없이 벼슬하는) 아들을 참봉으로 취직시킨다!”(이렇게 연줄로 취업한 아들이 잘 될 리가 없다. 직장에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퇴계는 한마디로 생활의 달인이었지만 그가 다른 남자들보다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다. 첫 부인과 사별한 뒤 재혼한 안동 권씨가 지적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부인이 역할을 할 수 없기에 남편이 나선 것이다. 그것이 문제였다고 해도 책임감이 강한 남성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생활인은 연암 박지원 씨는 젊은 나이에 아내를 잃은 뒤 재혼도 하지 않고 혼자 아이를 키우며 교육은 물론 식사보조까지 도맡아 했습니다. 고추장을 담가 멀리 사는 아이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 역시 자녀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잘 일하는 것도 있어 출세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은 아니지만 출세에만 집착하지 말고 올바른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하는 절제미를 발휘한다. 음, 매력적인 편이야.

마지막으로 소개할 분이 추사 김정희다. 책에는 추사가 유배되어 있고 아내에게 보낸 한글 편지도 다수 수록되어 있다. 역시 생활에 관한 잔소리도 많지만 더 특이한 것은 두 살 아래인 아내에게 존칭을 사용해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다. “할게요” 체이입니다 편지의 글만 보면 아내를 매우 존중하고 상냥한 남편이다.

그러나 그는 첩을 두고 아이를 얻었고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뒤를 이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먼 친척의 남아를 양자로 삼았다. 철저한 가부장적 유교문화를 수호한 마초였던 것이다. 합니다라는 존칭을 사용해 상냥한 편지를 보내도 의미가 없다. 다 소용없어!

이처럼 ‘생활하는 남자들’이 있었다면 글을 쓰는 여성도 있었던 사회가 조선이다. 그러나 역시 과문하기 짝이 없는 나는 조선에 이토록 글을 잘 쓰는 여인이 다수 존재했다는 사실도, 그들이 남긴 책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이매창 임윤지당 강정일당 이사주당 등이 그것이다. 수학자이기도 한 서영수합이라는 분도 있었다. 세상에, 조선의 여성 수학자라니!

이 책에서 매우 아름답고 감동적인 그림을 하나 얻었는데, 바로 조선시대 윤덕희(1685~1766)가 그린 <독서하는 여인>이다.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독서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검색하면 수백 명의 서양인이 그린 서양인의 독서 모습이 나온다. 그 수백 가지 이미지 중 거의 유일하게 떠오르는 조선 독서를 하는 여자. 그게 이 모양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도와준 남자들 책을 다룬 자리에 정작 도판은 이 책 읽는 여자를 싣는다.

살림하는 『조선의 남자들』 1

*사족: 책의 저자 전창권 씨의 비브리오그래피를 찾아보니 무려 지금까지 저서를 61권이나 출간했다고 한다. 책과 인터넷에 소개된 프로필로는 나이를 알 수 없지만 요즘 사진을 보면 늙은 분이 아닌 학자 같은데 벌써 저서가 61권이라니. 저서 목록을 보면 조선시대의 각종 문헌에서 수집한 지식 정보 철학을 재료로 한 책이 대부분인 것 같다.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를 향한 시각이 건강한 편인 것 같지만 역시 막대한 저서량을 자랑하는 강준만 교수처럼 무수한 인용을 통해 가능했던 다작이 아닌가 싶다. 이분의 책은 좀 더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그때까지는 판단 유보. 정창권의 조선살이를 하는 사내들을 읽는다.